내게는 달력에는 안 나오는 날을 따로 정리한 파일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마케터와 홍보인이 비슷한 파일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탁상 달력을 새로 받으면 그 파일을 열어 달력에는 없는 날을 채워 넣기도 하고, 그냥 출력해 벽에 붙여두기도 한다.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하려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산림의 날'을 넘어갈 무렵에는 안 보고 싶기도 했다. 판권 원고에 '1판 1쇄 2022년 4월 5일'이라고 써두고 만들던 책이 있었다. 판권에는 발행일을 식목일이라 써두었지만, 마음에는 산림의 날로 적어두었다. 그러면 좋을 책이니까. 제목이 무려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시대, 산림탄소경영의 과학적 근거»니까.
그런데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1교 편집 마감을 앞두고 목소리가 안 나오더니, 1교를 저자들에게 넘긴 날 확진되었다. 근육통과 오한은 마감 피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다. 저자들이 1교를 살펴볼 동안 쉬면 되니까. 1교가 돌아온 날, 얼른 수정내역을 정리해 디자이너에게 넘기고 싶었는데 마음만 그랬다. 그런 식은 땀은 독감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서 여러 작업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앓았다.
그 사이, 산불이 꺼진 자리는 황량하고 처량하게 남았고 발행일정은 산림의 날도, 지구의 시간에도 맞출 수 없게 되었다. 판권의 발행일을 다시 4월 15일로 고쳐 쓰고, 마음으로는 식목일로 고쳐 썼다. 다행히 책은 식목일 전날부터 저자와 함께 산림 관련 행사에 다닐 수 있었다. 몹시나 아슬아슬했지만 말이다. 코로나를 넘어서고 나니 종이가 문제였다.
처음부터 친환경 종이만 사용해 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본문 종이는 재생 펄프 함량이 높은 종이를 선택했고, 표지와 면지는 FSC 인증 종이 중에서 골랐다. 표지 코팅도 안 할 작정이라 고민이 많았는데, 디자이너가 제안한 옥수수 종이와 키위 종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표지 시안을 여럿 만들어보고 옥수수 종이로 결정을 했는데 그만, 종이 발주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본문 종이와 표지 종이의 결(방향)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 방법은 마음에 드는 종이를 사용하되, 종이의양을 2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자니 마음은 한갓진데 종이 낭비가 너무 심했다. 잉크를 덜 사용하는 시안을 채택한 것이 무색해지는 대안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종이를 바꾸는 것이었다. 종이의 세계는 숲처럼 넓고 생물종만큼 다양한데 코팅을 안 해도 괜찮은 친환경 종이를 찾자니 선택의 폭은 좁았고, 결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옥수수종이와 비슷하게 따뜻하면서도 더 든든한 질감의 종이를 찾아냈다. 그리고 감리를 보며 감탄했다. 걱정했던 보람을 느낄만큼 책과 잘 어울리는 종이였다.
종이를 바꾼다고 지구에, 환경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무였을 종이를 왕창 쓰는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친환경 종이는 비싼데, 종이가 비싸다고 책값을 비싸게 책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이 차이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고, 후가공을 안 한 표지는 눈에도 덜 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과학 신간 평대에 나란히 놓인 책 중 우리 책만 멋을 안 부린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했다. 화려한 표지들 사이에 수수하게 놓인 책을 한 눈에 알아보는 이들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그래도 나는 아마도 종이에 대해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그건 마치 1년에 두어 번 소등행사 한다고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지구의 시간에 1시간, 지구의 날에 10분 불을 끈다고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전세계인이 참여한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날, 그런 시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아는 것 혹은 참여하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알게 되면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작은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손톱만한 변화가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지구의 날이나 세월호가 잠긴 날이 인쇄된 달력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그런 기대를 한다. 그런 달력이 앞으로도 안 나올 거라면, 내가 만들면 그만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