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든 이것저것 먹을 걸 챙겨 외갓집에 갔더니 역시나 동생 생각에 한 솥 가득 닭도리탕을 끓여온 이모도 와 계셨다. 그렇게 모인 식구들이 밤 밭에서 한창 고군분투 중인 큰 외삼촌을 찾아갔다. 목 긴 장화에 낚시 조끼 차림으로 허리를 굽혀 밤을 줍던 큰 외삼촌은 뜻밖의 손님이 반가웠던지 소년처럼 웃었다. 밤 밭 한가운데는 어설프게 지어진 원두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 원두막에 걸터앉아 나눠 먹는 닭도리탕은 꿀맛이 따로 없었다.
포슬포슬한 감자며, 야들야들한 닭다리, 압력 밥솥의 실력이 분명한 찰진 밥까지. 이만해도 진미일미가 따로 없지만 여기에 잘 익은 파김치와 달큰한 무말랭이 무침까지 거들었으니 이만하면 완벽한 소풍 도시락이었다. 이모의 음식솜씨는 원래도 뛰어났지만, 이날은 야외에서, 여럿이 둘러 앉아 즐겼기 때문인지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그렇게 거한 만찬을 즐긴 뒤에는 즐거운 육체 노동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미 떨어져 있든지, 지금 막 떨어졌든지 하는 밤들을 쏙쏙 골라 주워담는 일인데 몇 년 전 등 위에 밤송이가 떨어져 한 동안 연고를 발랐던 추억도 있고, 눈치 없이 나타난 뱀 때문에 기절초풍하며 산을 뛰어내려갔던 기억도 난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열심히 밤을 주워 담고 있던 그때, 평소 이렇다 말이 없던 외삼촌이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혜정아 내가 밤 잘 줍는 법을 알려줄까? 밤이 보이면 바로 주워야지 이따 줍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더라. 어디 있는 줄 아니까 금방 다시 주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다시 돌아와보면 꼭 있을 것 같던 밤이 없어. 그러니까 그때 그때 눈에 보이는 밤을 주워 담으면 돼” 마치 유치원 아이를 가르치듯, 차근차근 또박또박 이런 말을 남기던 외삼촌은 너희 시댁 어른들에게 줄 밤을 좀 챙겨야겠다고 옆 산으로 가버렸다. 옆 산이 좀 험하긴 해도 밤이 훨씬 굵고 반들반들 좋다던 외삼촌이었다. 그렇게 외삼촌이 땀으로 러닝셔츠를 다 적셔가며 따온 밤으로 그 밤 나는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외삼촌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은 그 날로부터 일주일 뒤에 날아들었다. 평소처럼 밤을 줍던 외삼촌은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갔고 영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거짓말처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곁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유난히 하늘이 좋던 그 날이 외삼촌과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셈이다. 나중에 전해들은 얘긴데, 엄마가 외갓집에 도라지 봉지를 그냥 두고 가는 바람에 꼭 이틀 뒤 외삼촌이 집(친정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 엄마 모두 출근을 했던 터라 외삼촌은 도라지 봉지며 시골서 마련한 채소 봉지를 그냥 문고리에 걸어두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일을 떠올리며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날로부터 4일 뒤 외삼촌이 잘못됐으니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던 기회를 날렸다는 얘기다.
어찌됐든 모두의 아쉬움 속에 외삼촌은 떠났고, 다른 식구들 모두 이제 그의 부재를 익숙하게 여기는 눈치다. 대단한 추억이나 정을 나눈 적이 없으니 나 역시 하루하루 외삼촌을 잊어가는데, 그럼에도 밤을 줍던 그 날, 나에게 해준 다정한 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진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알밤이 다시 찾아가면 없더라는 말. 그러니 그때 그때 보이는 밤을 놓치지 말고 주워 담으라는 말이 어쩐지 여러 의미로 와 닿기 때문인데 밤이 사람 같기도 하고 시간 같기도 해서 아프다.
몸이 크게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어떤 형태로든 큰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늘 ‘나중’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나중에, 이따가, 다음에 같은 말로 자꾸 유보하듯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 같던 그 소소한 일상들이 결국 삶의 전부고 행복이었다는 뉘우침이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맥락의 크고 작은 후회를 나도 꽤 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잊고 ‘다음에 보지 뭐’ ‘이따가 연락하지 뭐‘, ‘내일 놀아주지 뭐’ 같은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또 먹는다.
오비이락을 두고 너무 과한 의미부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만 외삼촌이 이런 나의 망각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행복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고. 다음을 기약하기엔 앞날은 너무 알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