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만나지 못한 지 38개월째, 나는 그림책을 만들었고 발행인이 되었다. 시작은 멜로였다.
그를 못 본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미국에 사는 동생이 임신을 했다. 코로나는 날로 퍼져나갔고, 아기는 쑥쑥 자라났다. 동생은 엄마아빠도 없이 입덧을 하고, 산통을 겪고, 아기를 낳았다. 동생은 아기를 기다리며 엄마아빠를 그리워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아기와 그 아기가 품은 아기를 기다리며 매일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가셨다.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4년째 롱디 중이던 내가 참 잘 아는 마음. 누군가 그런 마음을 또 느끼게 되다니, 안타까웠다.
그해 여름 나는 격주 주말마다 그림책 클래스에 나가고 있었다. 생각과 그림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은 잘 만든 그림책을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연거푸 불어온 태풍 때문에 그림책 클래스도 멈추었다. 그때 내 그림책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동생의 아기를 기다리는 우리 가족의 마음을 그림책에 담기로 했다. 설레지만 먹먹해서 막막하다 간절하게 애틋한 그 마음은 내가 잘 아니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다르지 않은 마음이니까.
매일 아침 일어나 비 내리는 창문을 등지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연필로 한 스케치를 조금씩 지워가며 유성 색연필로 칠을 하는 과정은 재미있었고 명상 같기도 했다. 생각이 그림이 되는 건 신기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시간마다 지우개 똥이 엄청나게 쌓였고, 저녁이 되면 색연필을 깎아 대느라 무심하게 돌렸던 손목이 아팠다. 비가 덜 오던 어느 날은 연필깎이를 사러 외출하기도 했다. 세상에, 연필깎이라니.
그림을 다 그리고 태풍도 멈추자 설렘은 작아지고 막막함이 커졌다. 그래서 다시 멈추었다. 그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고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더니 제법 야무지게 앉아 돌잡이까지 하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 버렸다. 나는 기다리는 마음에 멈추어 있었는데, 아기는 성큼성큼 기어왔다.
기다리기만 하던 마음도 자라야 했다. 아기가 미국으로 갈 때 그림책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마감일이 정해지자 비로소 무엇을 걷어내야 할 지 보였다. 이번에는 더 많은 지우개가 필요했다. 그리고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2시간 전에 가까스로 그림을 끝냈다. 태풍이 오는 시간에 그렸던 그림은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멈추어 있던 동안 주변의 칭찬 기계들이 속삭였다. '네가 그 그림책을 완성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살 거야.' '네가 펀딩을 한다면 내가 첫 번째 후원자가 될 거야.' '교보에서 만나야 해. 인증샷을 찍어야지.' 습자지를 닮은 내 귀는 그 말들에 홀랑 넘어갔다.
지난 연말, 아기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닷새 전 책이 나왔다. 아기가 미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놀랍게도 광화문 교보의 새 책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 책의 독자님들이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그림책 독자도 2545 여성들이 압도적인데, 이 책은 남자 어르신들이 주로 구매한다. 온라인 서점의 통계에 의하면, 50대와 60대와 70대 남성들이 책을 샀다. 가끔 60대 여성도 있고 40대 여성도 있다. 실은 대부분 오프라인에서 팔리고 온라인 판매량은 소소하고 미미하기 그지없어 통계가 맞다고 자신하기는 어렵지만, 경향성은 뚜렷하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친구일까 싶었다. 아니란다. 유치원 아이들이 그렇게나 기다린다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일까. 누구를 기다리는 누구이시기에 이 책을 찾아냈을까.
한 달 전에는 교보에 가면서 책이 1권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막상 서점에 갔을 때는 책이 없었다. 보통 큰 서점에서는 신간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닌 그림책은 비닐 포장지로 곱게 싸서 벽면 서가에 꽂아둔다. 그래서 펼쳐볼 수도 없다. 나조차 내 책의 책등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은 책을 찾아내는 걸까. 독자님을 만나게 된다면 정중하게 묻고 싶다. 이 책을 왜 골랐는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제발 알려달라고. 어떤 기다림을 품었기에, 누구를 «얼른 만나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고. 알려만 주신다면 독자님이 사용한 키워드를 제가 마케팅에 활용하고 싶습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여러 시선 속에 숨겨둔 내 기다림을 친구들은 멜로로 읽는다.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다. 시작이 멜로였고 내심도 멜로인데, 예쁜 짓이 늘고 있는 조카는 매일 더 사랑스러워진다. 누군가에게는 신기루 같을 나의 연애는 코로나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까지 받고 있는데, 막막하고 무력하던 마음이 좀 작아졌다. 설레고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은 날로 커진다. 그게 기다리는 마음의 힘인 것 같다. 지금 바로 만날 수는 없지만, 마음은 멈추어 있지 않으니까.
롱디든, 격리든, 피치못할 어떤 사정이든,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이 힘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곧 혹은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자꾸만 전하면 되니까. «얼른 만나고 싶어 Can't wait to meet you»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