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질풍노도의 시대로부터 굉장히 멀어졌으니 저 시기에 대한 지긋지긋함과 불쾌함 그리고 내가 10대 시절에 부모님에게 저지른 만행들이 떠올라 정신적으로 꽤나 피로해졌고 더불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영화의 몰입도가 좋았던 거겠지. 남편은 내가 보고 싶어 했기에 함께 영화를 보다가 이렇게 암울하기만 하다니! 재미있는 영화인 줄 알았다며 나를 작게 원망했지만 어쨌든 그도 굉장히 집중해서 끝까지 봐내고 말았다.(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한참을 헤어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했던 못된 말들과 행동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중후반까지도 부모님에 대해, 왠지 모르게 엄마에게 더 미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나보다 남동생을 더 예뻐했던 것 같고, 나에게는 비이성적인 체벌이 잦았으나 남동생은 엄마에게 거의 맞지 않고 자랐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안맞았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엄마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내게 더 가혹했다. 외박의 문제라든지, 엄마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관련해서라든지... 그래서 엄마는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통터져하기도 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나의 이런 기분을 털어놓으며 “내 생각에 우리 엄마, 아빠는 부모님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 같아”라고 아주 잔인한 평가를 내렸다. 이 생각과 언행이 얼마나 주제 넘는 말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그 후로 5년이 더 걸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결혼을 한 후에, 예상했던 결혼 생활과 실제의 삶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몸소 겪어본 후에서야, 우리 엄마와 아빠 곧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들이 후회가 됐다. 지금의 나와 남편 보다 훨씬 어렸던 나이에 가정을 꾸린 엄마와 아빠는 나와 남동생을 낳고 쉼 없이-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두 분 모두 자영업을 하셨기에 물리적으로 쉼 없이-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오셨다. 또한 결혼해 독립을 했음에도 나는 친정 부모님 댁 근처에 살며 다양한 부분에서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엄마와 아빠의 삶에 대해 평가하려 했을까... 어디든 숨고 싶어진다.
최근 남편과 나의 관심은 주거의 문제에 도착했다. 남편과 나는 생물학적 나이 차이가 9살이 나는데 아무리 연상연하 커플이 대세라도 이 정도의 나이차는 양쪽 집안에서 기대했던 커플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는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지만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양쪽의 금전적 도움 없이 부부가 되었고, 대학원생과 갓 사회인이 된 커플이었기에 주거 안정 부분에 있어서 취약한 편이다. 어떤 집을 살 것인지, 어떻게 집을 살 것인지에 대해 남편과 가족회의를 하다 보면 정말 새삼스럽게 부모님의 위대함과 존경하는 마음이 피어오른다. 어떻게 엄마와 아빠는 자식 둘을 키우며 본인들의 즐거움 보다 우리의 즐거움을 중심으로 사실 수 있었을까.
처음 남편이 장모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셔? 라고 물어왔던 날이 생각난다. 어린 사위지만 사려 깊은 내 남편은 우리 부모님 댁에 가기 전 장모님 입맛에 맞는 무언가를 사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나니 딸은 이 질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며 답을 망설여야 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글쎄... 뭘 좋아하셨지? 망나니 딸은 그래서 요즘 부쩍 부모님의 취향을 살피는데 신경을 쏟고 있다. 물론 시부모님의 취향도 함께 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