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지난 5달간 나의 서사는 대략 이랬다. 초반엔 나에게 일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했다. 여기저기 나를 소개하며 일을 물어다 주는 선후배가 하도 고마워서, 이에 부응하려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며 일을 마무리 했다. 기혼자들이 하나같이 공감하는 인간관계 정리 시점이 있다면 바로 청첩장을 주고 받을 때다. 겸연쩍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청첩장을 건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반색하며 축하해 주는 쪽이 있고, 예상보다 훨씬 더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김새게 만드는 쪽이 있다. 그렇게 내 생각보다 나를 더 좋아했거나 싫어한 사람을 구분해 주는 ‘관계의 리트머스지’가 바로 청첩장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있는데, 프리랜서가 된 나의 입장에서는 ‘소개’가 이와 비슷했다.
내 능력을 여기저기 과장(?)하며 홍보해준 선, 후배들의 마음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크고 따뜻했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일이 들어오는 것까진 좋았으나 문제는 양이었다. 일의 양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었다. 초반엔 일이 적어 그야 말로 아르바이트 수준의 수입이 들어왔지만, 그 대신 몸이 편했다. 유유자적 식구들과 지방으로 여행을 다녔고, 여기저기 기웃대며 푼돈을 쓰러 다니는 것으로 소일했다. 정말이지 살 맛나는 나날이었으나 다른 한편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만 원 한 장 쓰는 것도 멈칫할 때가 있었다.
반면에 차근차근 일이 늘자 이번엔 스트레스가 쌓였다. 줄 창 열흘간 하루도 쉼 없이 내리 원고를 쓰다 보니 어깨가 딱딱히 뭉쳤고 관자놀이가 지끈했다. 달력엔 빽빽이 스케줄이 들어찼고, 개인적인 용무를 볼 틈이 없어 친구와의 약속도 몇 번이나 미뤘다. 이래저래 욕심으로 일을 맡았다 영 시원찮은 결과물을 낼 때가 생기는가 하면, 편한 일과 어려운 일을 구분하며 자연히 페이에 대해 적절한가? 부족한가? 넘치는가?란 계산이 따라 붙기도 했다.
일률적으로 월급을 받던 시절엔 잘 모르던 셈법이었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만 적당히 하면 될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원래 우유부단한데다 ‘미움 받을 용기’가 없는 나로써는 거절이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일을 가려 받는다는 다소 건방진 인상을 줄까봐 두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주어지는 일을 쳐내며 근근이 살 것인지,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라도 내 이상을 위해 열렬히 삽질을 해 볼지에 대해서도 매일 생각이 바뀐다.
회사에 다닐 땐 인간관계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지긋지긋했는데, 지금은 또 시시콜콜함을 나누며 울고 웃던 동료들이 문득문득 그립기도 하다. 이래도 마땅찮고, 저래도 마땅찮은 혼돈의 시기를 겪으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왜 회사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들게 됐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문제 의식도 생긴다.
이렇게 녹록치 않은 프리랜서의 삶에 언제쯤 잔잔한 평화가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그래도 뛰어들어보길 잘했다는 판단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프리랜서라는 ‘가보지 못한 길’을 부러워하며 혼자만의 뇌피셜을 키웠을 테니까. 몸으로 부딪히며 깨치는 경험은 언제나 소중하다. 그 소중한 걸 쌓는 시간이 마냥 ‘꽃 길’일리는 만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