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이 만화책을 보게 됐다. 나 역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주인공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 또, ‘귀찮음’에 대한 정의에 100퍼센트 공감하며 나도 그것과 싸워 이기는 훌륭한 어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적인 ‘귀찮음’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참 후에야 귀찮음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일이 많으니까. 시간이 있으니까, 컨디션이 나쁘니까. 애인과 싸웠으니까. 상사에게 깨졌으니까,....조금 있다가 하지 뭐.‘
당시에는 뭔가를 당장 하지 않아도 되고, 당장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 모든 이유가 실은 귀찮아서 댄 핑계였다. 온갖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룬 다음 막판에 몰아치는 방식은 곧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 가지를 미루고 나니 그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지체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나중에는 뭔가를 시작한다는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어느 순간 일상생활까지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이것이 귀찮음의 실체였다. 나의 시간과 마음을 장악해버린 것이다.
뒤늦게나마 귀찮음의 폐해를 깨닫고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부터 매일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작성해두고 자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있다. 스트레칭, 청소 등 사소한 것부터 회의 준비까지 빠짐없이 기록해 두는데 지금까지는 꼭 한 두 가지를 못하고 넘어간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이 다섯 가지가 넘어가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지금 정한 일정을 한 달 이상 유지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여기까지 가면 그 다음 목표를 정할 예정이다.
귀찮음은 강적이다. 그것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하는 것이다. 뭔가를 ‘그냥’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성실하게 반복해서 ‘그냥 하는 습관’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성실함과 꾸준함, 인내력이 필요한 일이다. 주인공의 표현 그대로 귀찮음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건 말해 무엇 하겠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면 그 참혹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발가락과 발등의 관절은 대부분 옹이처럼 툭툭 불거져있고, 발톱은 피멍이 들어 새까맣게 변해있다. 어떤 동작을 해내기 위해 그냥 반복했던 흔적이다. 또 살아있는 피겨 레전드, 김연아의 명언도 있지 않나. 큰 대회를 앞두고 스트레칭을 하는 김연아에게 한 취재진이 물었다.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 하세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김연아와 강수진은 ‘그냥 하는 것’으로 한 분야에서 손꼽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냥 하는 좋은 습관은 삶을 탄탄하게 만들어주고,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하고자 하는 것, 해야 하는 것을 그냥 해내는 사람은 훌륭하다.
새해를 맞아 다시 다짐해본다.
‘귀찮음과 싸워서 이기는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