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으나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고, 혹시나 하는 건 역시나 그렇다. 불길한 느낌적인 느낌은 언제나 틀리지 않지. 치과 선생님은 에둘러서 말씀하시지 않았다. 내 사랑니는 완전 매복이라 빼기 힘든 케이스로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말씀해 주셨고 한 치의 거짓 없이 여기서 지옥을 맛봤다. 정말 현생에 지옥이 있다면 내가 앉아있던 치과 의자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랑니 발치 모두 마취 시간 제외 이빨을 빼는 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심지어 두 번째 발치 때는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아 두 세번의 발작을 경험했다…). 사실 뺀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 입을 벌린 채 살을 찢고 이빨을 드릴로 깨부수는 전쟁과도 같은 일들이 그 작은 공간에서 벌어졌다. 누군가 사랑니는 잇몸에 레고가 들어 있는 거라고 했는데, 잇몸에 잘못 맞춰진 사랑니를 빼내는 건 전체 레고를 깨부수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 의사도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는지 간호사에게 ‘어, 거기 아니야, 아니야’ ‘여기 잘 안되니까 무슨 도구 좀’ 등 초록색 천 위로 펼쳐지는 둘만의 대화가 나직이 귓등을 때리는데 고통 가득 ASMR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듣는 기분이란. 하….
발치 전에 내 인생이 먼저 끝날 것 같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한숨과 함께 마무리되며 이 여정도 끝나기는 하는구나, 라는 안도도 잠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고통은 또다시 시작되었으니, 지혈을 했는데도 피가 멈추지 않아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 계속 남아있는데 이를 뱉지 못하니 삼켜야 했고,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며 입안에서부터 시작된 저릿한 고통은 어느새 온몸으로 번져 매 끼니 진통제 없이는 보낼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혼자 있는데 더 미치도록 혼자 있고 싶고, 세상 살기 싫어지는 어둠의 나날을 도합 한 달 정도 보냈다.
당시 나를 마주했던 모든 이들에게 갑분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마치 사랑니가 벼슬인 양 사랑니 익스큐즈를 하고 다녔는데 이를테면 사랑니 발치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 모르고 잡았던 약속을 줄줄이 취소해야 했으며, 같이 일한 사무실 사람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내 사랑니 고통사(史)를 들어야만 했다. 오만상 찌푸리며 의욕 없이 죽을 먹는 나를 바라봐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근 한 달을 고통받으며 분노가 치밀었다. 와, 도대체 누가 이름을 이렇게 예쁘게 지어서 사람을 더 화나게 하나, 사랑이란 말을 어따 갖다 붙일 데가 없어서 이따위 사랑니에 갖다 붙이나 그런 불만을 주위 사람들에게 토로하다가 문득 내 첫사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OFFICIAL’ 첫 연애가 생각났다. 그와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났는데 내가 여러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나 어쨌다나. 지금 보면 진짜 개수작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f(x)의 첫 사랑니 가사처럼 ‘어느 날 깜짝 나타난 진짜 네 첫사랑’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헤어졌고 심지어 내가 헤어지자고 해놓고 그 고통에 사흘 밤낮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가족한테 들키기 싫어서 입을 틀어막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베갯잇을 다 적셨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파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내일이 과연 오느냐며 울었더랬다. 울다 지쳐 잠들었는데 다음날 눈을 번뜩 뜨며 일어난 나 자신에 놀라던 시절. 이리 마음이 아픈데 죽지는 않는구나, 이리 슬픈데 나 빼고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구나, 죽을 것 같은데 밥만 잘 먹구는나 같은 사랑 노래 가사들이 심장을 후벼 팠던 그때 그 시절.
사랑니 고통과 이때의 고통을 비교하자면 이제는 아련하게 기억이 날까 말까함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더 고통스러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지옥이라고 칭한 물리적 고통은 진짜 사랑의 고통 앞에서 비벼보지도 못하고 KO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빨을 뿌리째 뽑는 일과 사람을 뿌리째 뽑는 일. 생니를 뽑으면 비릿한 피비린내와 깨질 듯한 두통이 나를 에워싸지만 사람을 뽑아내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의 살점을 스스로 뜯어내 에워싸는 고통조차 사치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랑으로 아파하고 이대로 죽을까 봐 걱정하던, 좀 모자랐던 ‘과거의 나’가 사랑니 고통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지금의 나’를 보면 어지간히 한심하게 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 아팠으면 지금쯤이면 사랑을 알 나이인데 여전히 일도 모르냐고, 지금 고작 사랑니에 아파할 때냐고 면박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