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는 루스벨트, 손기정, 남승룡과 함께(?) 1936년을 맞이해, 1983년 사망할 때까지 셰넌도허 국립공원의 산림 감시원으로 살았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아무도 셰넌도허 공원의 산림 감시원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미국은 공황에 휩싸여 있었으며, 독일에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 있었고,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발발했다. 누구 하나 로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공황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였지만 로이는 매일 셰넌도허 국립공원의 이곳 저곳을 성실하게 살폈다. 어린 곰들은 잘 자라고 있는지, 혹시 흰불나방 애벌레가 오크 나무들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봤다. 로이가 너무나 산림 감시원으로서 성실하게 일했다고, 충분하다고,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가 신문에 실릴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무려 일곱 번이나 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이나 벼락을 맞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그는 1942년부터 1977년까지 일곱 번 벼락을 맞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신문에 한 줄 실릴 수 있는 시대였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미국은 오랜 공황에 고통받고 있었으며, 독일에는 나치 정권이, 스페인에는 내전이 일어났다. 로이는 일곱 번 벼락을 맞았다.
일곱 번쯤 벼락을 맞았다고 적어 놓아야 겨우 전지구적인 재난과 불행에 어느 정도 값 하는 문장이 된다. 로이는 일곱 번 벼락을 맞았지만 살아 남았다. 사람들은 그의 직업이나 삶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만, 연이어 벼락을 맞으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일곱 번쯤 벼락을 맞아야 겨우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는데, 로이 클리블랜드 설리번이 그런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누구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없이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찍이 벗어나 있지만, 개의치 않고 정해진 시간에 숲과 동물들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리는. 충분히 성실한.
매주 금요일 오후에 퐁당을 발송할 때마다 비슷한 기분이 든다. 발송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고, 특별히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성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 확인해 보니 두 명이 구독을 취소했다. 퐁당이 일곱 번쯤 벼락을 맞아서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퐁당의 독자들이 별안간 수천, 수만으로 늘어날 리는 없기에, 한두 명의 구독 취소도 눈에 뜨인다.
퐁당 특성상 대부분의 메일이 일하는 사람들의 계정으로 발송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회사를 옮기거나 하면 구독도 취소되는 일이 적지 않다. 오늘 구독을 취소한 두 사람도 퐁당의 내용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직장을 옮기는 등 주변 상황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기를 바란다.
구독 취소한 분들의 이름은 따로 메모장을 만들어 기록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