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새해 들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불운하게 몸을 다치는 사고를 입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상해의 정도에 있어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 분명하니 나는 사고라고 표현해야겠다. 첫 번째 사고에서 그는 무릎 부상을 입었고, 두 번째 사고에서 손목 부상을 입었다. 나는 마치 내 몸이 다친 듯 안타까움을 느꼈으나 그가 버려둔 사용 이후의 반창고를 보는 순간 결혼 생활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솟아나기 시작했다. 결혼 도대체 뭘까.
내 남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다. 나는 그런 그를 ‘둔하다’고 표현하거나 내가 조금 예민한 편인가, 생각한다. 둘이서만 살고 있으니 비교할 대상이 서로뿐이라 누구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를 기준으로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불만을 쌓아뒀다가 그에게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나라면...”, “내가 너였다면...”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곤 한다. 그러면 그는 나는 네가 아닌데 왜 너의 기준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느냐며 응수한다. 그렇지만 다 쓴 반창고를 침대 옆 협탁에 두는 것은 예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불쾌할 거 같은걸, 하고 생각하고 마는데... 결국 한쪽이 감내한 채 싸움이 무마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사건은 이런 것이다. 나는 빨래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빨래를 돌린다.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는 것은 2-3일에 한번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나 남편은 빨래가 쌓이다 넘쳐도 빨래를 그냥 방치하고 청소도 내가 “오늘은 청소의 날이야”라고 했을 때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한다. 아마 집안일에 대한 기준이 나와 다르고 아직 이 부분을 맞춰가는 중이라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겠지. 물론 남편도 내가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하우스 메이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하우스 메이트!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인데 부부가 된다는 것은 연인, 친구, 하우스 메이트, 새로운 가족, 동지처럼 굉장히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연인으로서의 역할과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역할에는 만족하고 있고 하우스 메이트로서의 역할에 불만족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 결혼 40년차가 되는 엄마에게 결혼 생활이 늘 언제나 만족스럽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불과 며칠 전에) 앞서 열거한 것과 비슷한 사례로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마 남편은 몰랐을 불만들이 야금야금 쌓이고 있었기에 던진 질문이었는데,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 소리였는지는 말을 뱉은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결혼 전 부모님과 살았고 내가 부모님과 사는 동안 봐왔던 아버지의 ‘옛날 사람’으로의 면모를 생각하면 내가 과연 엄마라면 과연 만족할만한 모습인지에 생각이 도달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낄 찰나 엄마는 빵 터지고 말았다.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배를 잡고 웃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에서 충만함과 만족감이 떠오른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엄마와 아빠의 역사 속 증인이고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했었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함께 하는 일상들이 기억에서 추억이 되고 이 추억들이 쌓여 역사가 되어가면서 나 또한 남편과 나의 관계가 대체불가능한 타자가 되어감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즐겁고 행복했던 자리에 함께 손을 꼭 잡고 있었던 당신을 집안일에 완벽한 다른 누군가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가끔은 참을 수 없는 화가 솟아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