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지겨워서 사무실 TV를 틀어 놓고 축구를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다음 번 A매치 경기 중계 예고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나의 올 타임 넘버원. 커트 코베인의 음악이 국가대표 A매치 경기 중계 예고 BGM으로 쓰이고 있었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다 말고, 갑자기 나는 울었다.
펑펑펑 울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너바나의 음악이 저렇게, 거지 같이 축구도 못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도 올림픽 본선도 아니고, 예선전 따위의 경기 중계 예고 음악으로 아무렇게나 소환돼서 아무렇게나 편집되고, 관객도 없이 TV 화면에 흐르고 있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나는 도대체 뭘 했나.
내가 뭘 했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TV를 끄고 보고서 작성하던 걸 멈추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불과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았지만.
흔히들 시간이 지나면 원래 의미 있어 보이던 것들이 자기 색깔도 바래지고, 뜻도 희미해진다고 하는데, 아니다. 원래 아름답고 훌륭하고 멋진 것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나 의미를 간직하는 데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서투르거나, 훼손시켜도 모른 척 하거나, 아무튼 온갖 핑계를 대며 그것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는 탓이다.
아직도 너바나를 곧잘 듣는데, 사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듣기에는 적절한 음악이 아니다. 이 음악을 함께 듣던 이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바나를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운동하러 가서 무거운 바벨을 반복적으로 들어올리거나, 끌어당기거나, 밀어내야 하는 순간에 너바나를 듣는다. 마음은 더 이상 웅장해지지 않지만,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떨 때는 바벨을 들다가도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지난 번에 퐁당에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일생 몫을 다하고 눈을 감게 되면 BGM으로 엄정화 가수의 엔딩 크레딧을 틀어 달라고 했는데, 한 곡을 추가하는 게 좋겠다. 너바나의 ‘lith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