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할 일을 하다가 내가 자리를 잠시 비우고 돌아오면 사소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벌어진다. 고양이가 내 자리를 침범한 것이다. 의자 두 개를 다 차지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리를 두고 내 자리에 앉아 있다. 엉덩이를 살살 밀어서 옆으로 보내려고 하면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가 내 손을 공격한다. 마치 자기 자리를 내가 빼앗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원래 자기 본위적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2분 전까지만 해도 내 자리였는데 그걸 차지한데다가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다니. 나도 자존심이 센 편인데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엉덩이에 두 손을 대고 단호하고 재빠르게 옆으로 밀었다. 고양이는 냥- 하는 짧고 강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멀뚱멀뚱 나를 보더니 다시 몸을 둥글게 말고 코를 바닥에 대고 눈을 감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태도의 문제다. 기회가 생기면 재빨리 두 다리를 뻗는다. 밀어내면 적반하장으로 버틴다. 버티다가 밀려나면 또 그 자리가 내 자리려니 한다.
이런 고양이의 태도를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여러 번 보았고, 또 당하기도 했다. 여우 같은 동기, 권위로 무장한 상사가 여러 번 내 자리를 침범했다. 여기서 내 자리란 내 권리, 내 생각, 내 의지다. 이것들을 침범하고 무시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은 처음부터 마치 자기 것처럼 가지고 갔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저 한 줌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람을 밀어냈다. 어떤 경우에는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자리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그들의 자리가 내 자리였던 것처럼. 그들의 실책이 내 결정이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몰랐다. 눈 뜨고 코 베인 것이다. 하도 베여서 더 썰어 낼 코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쯤 나는 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저리 가. 거기 내 자리야.' 그랬더니 물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공격적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쯤 되면 상대방은 내 코를 노리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노리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내가 내 자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조직은 종종 그렇게 돌아간다. 말하지 않으면 호구가 되고, 호구가 이를 드러내면 통째로 뽑으려 든다. 태생이 무디고 기가 약해서 호구의 싹이 파릇파릇했던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치면서 깨친 생존의 이치다.
그렇다고 고양이와 저들을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먼저 고양이에겐 의도가 없다. 순수한 욕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내 의자에 자기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고 해서, 나를 영원히 서 있게 만들겠다거나, 자기 자리도 못 지키는 사람이라고 무시할 생각도 없다. (... 없을 것이다.) 또 밀어내면 순순히 (손 등에 이빨 자국 두 개가 남을 때도 있지만) 제 자리로 가지 않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침범하는 의도는 불순하다. 당하는 사람은 불쾌하다. 밀어냈을 때 밀려나면 그나마 불쾌한 경험으로 남지만 내 자리를 완전히 빼앗길 경우에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여 한동안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세상이 점점 삐딱하게 보이는 후유증도 앓게 된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이라고 자기 자리를 철옹성처럼 지키는 것도 아니다. 때론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호구가 된다. 가끔 호구들이 모여 자리싸움을 벌이다가 그게 과열돼서 패싸움으로 번질 때가 있다. 어쩌다 그걸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제발, 그만 좀 해. 이 호구들아. 늬들 자리는 윗집 큰 고양이가 다 물어갔어.
고양이처럼 귀엽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