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제.
너무 자주 병원에 대해 언급하게 되어 피하고 싶었으나, 어제 또 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본 뒤 약을 처방받았는데,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은 담배를 절대 절대 피워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받으며 흡연금지라는 문구를 보고 약사님께 문의했다가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았다. “금기입니다. 금기!” 라며 절대 피지 마시란 다짐을 기어이 내게 받아내긴 했으나 ‘이런 약이었다면 의사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약을 처방받을 것을 그랬다’, 부터 ‘어차피 참은 거 좀 더 알아서 치유될 때까지 기다릴 것을 그랬다’ 등 수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한지 이제 겨우 하루 하고 반나절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침부터 잠깐의 틈만 생기면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약간의 우울감화 함께 기분이 들쑥날쑥해져서- 이 약과 흡연의 관계에 대해 폭풍 검색을 했다. 뉴스 기사에서 다양한 경구피임약과 혈전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혈전 생성 확률이 코로나 예방주사 보다 경구피임약이 더 높다며 코로나 예방주사의 안전성을 설명하기 위해 들러리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너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성의 몸은 한 달에 한 번씩 월경이라는 이름의 출혈을 감내해야 하며, 월경이 제때 시작하지 않거나 양이 적어지거나 혹은 많아지면 걱정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나의 배우자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를 봤는데, 아이를 갖기 위한 신체 구조로써의 자궁을 내가 계속해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왔다. 사실 피부의 탄력과 나이 보다 어려보이는 외모에 꽤나 집착을 하는 나약한 사람이라서 완경 이후 여성의 피부 탄력이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완경에 대한 걱정까지도 함께 하는 복잡하고 황당한 사람이면서 말이다.
과학의 발전 속도가 여성의 삶의 질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이 글에서는 흡연하는 여성에 한정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왜 나는 자궁의 건강과 끽연을 동시에 누릴 수 없을까. 경구피임약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면서 혈전 생성이 없는, 아니 그게 어렵다면 최소화하는 약 개발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나는 문과 출신이라 약 개발에 도움을 줄 순 없겠지만 세상의 어떤 이과생이 지금 이런 연구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응원을 보내 본다. 비흡연자인 남편은 이런 상황을 너무 재미있어하며 이번참에 금연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글쎄, 어떻게 될까. 한 달 후의 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흡연자의 길을 끝낼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