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 춥긴 하지만, 버스를 타는 대신 걷기로 한다. 요즘 들어 소월길은 한참 더 속이 깊어졌다. 숲을 내려와 펜스를 넘어오는 공기도 색깔도, 그 장면을 지키고 서 있는 불빛들도 더 짙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가만하다. 혹시 내가 방해가 될까, 숨을 죽이고 걷게 된다. 미리 연락을 하고 올 걸 그랬다. 오늘 조금 늦었는데요, 실례지만 있다가 11시쯤 찾아 뵈어도 될까요? 하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연락처를 모른다. 소문에는 그 숲의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루트가 있고, 몇몇 사람들은 용케 체류 자격을 얻어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데 나한테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신청서를 내긴 했지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담당자의 일처리는 더디고 게으르다. 어쩔 수 없이 실례를 무릅쓰고 나는 하염없이 겨울 숲 주위를 걷고 또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면 나무들도 그들을 붙잡고 있는 흙도 공기도 안으로 안으로 문을 닫아 걸고 나를 경계하는 느낌이 든다. 방해받기 싫다고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이십 미터쯤 거리를 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다. 걷고 있을 때 아마도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예민한 감각들을 마음껏 개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름의 숲이 활기차고 방만하다면, 겨울 숲에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아름다움과 긴장감이 있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와도 손쉽게 화해하지 않는. 저 혼자 높고 아름답고 완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