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미야모토 테루의 인터뷰를 읽었다,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다.
20세기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을 보고, 아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했다. 아무런 이유도, 전조도 없었다. 여자는 이유를 알고 싶다. 왜 가족을 버리고 세상을 떠났는지 듣고 싶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영화는 말해주지 않았다. 알고 싶어서 소설을 읽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소설에도 이유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2001년 <원더풀 라이프>가 개봉했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한했다. 마침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됐다. 거의 대화가 끝날 즈음, 무용한 질문을 했다. <환상의 빛>에서 남편이 죽은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알 것 같다. 그런데 알고 싶다. 공식적인 답이 아니라도, 그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말해줄 수 있는가. 물론 고레에다는 말해주지 않았다. 자기도 모른다, 고 답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르겠지. 누가 죽은 이유를 유서에 적는다고 해도, 단지 그것만이 자살의 이유일까. 때로는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죽음만이 아니라 어떤 단순한 행동일지라도 타인의 이유를 정확하게, 선명하게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그 시절은 여전히 죽음에 대해 막연하고 끝없는 고민을 할 때라서, 자살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떤 이유, 어떤 정도면 자살을 해도 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답을 들어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설사 그의 이유를 안들, 그것은 그만의 이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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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To School Elizabeth Adela Forbes (Canadian, 1859 –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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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인터뷰에서, ‘미야모토 선생님에게 있어서, 또는 미야모토 문학에 있어서 행복이한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미야모토 테루는 이렇게 말한다.
뭐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게 있고 가족들이 있어서 저녁에 한잔하고 이불에 들어가서 ‘아,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행복이란 뭘까요. 말로 할 수 있다면 문학 따위는 필요 없겠지요.
죽음의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등을 한참 생각하던 때였다. 어딘가 한 잡지에서 에세이 청탁을 받았다. 주제가 ‘행복’이었다.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면 무조건 쓴다, 는 원칙을 지킬 때였는데, 조금 생각하다 거절했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 행복이란 건 그냥 개념 같고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등을 이야기하며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냐고. 그래서 어찌저찌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는 에세이를 써서 보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생각하면서.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다르다. 여전히 행복이란 일종의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고 살아가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성과 마찬가지로, 추구하는 이상 같은 것이 아닐까. 막말로 하자면, 거짓이어도 인생에 도움이 되고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상의 안온함, 즐거움 같은 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조촐하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행복해? 라고 묻는다면, 그런 것 같다고 답할 것이다. 어느새 날아가버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만나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믿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지금도 책과 영화와 만화를 두서없이 보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알고 싶으니까. 저마다 다른 행복이 무엇인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으니까, 마구 뒤적이며 누군가의 죽음을, 행복을 기웃대는 것이다. ‘행복’한 일상을 소소하게 쌓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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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봉석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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