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리네르는 근거없는 흥분과 광기가 전염병처럼 떠돌던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 대전 시기를 살아낸 작가다. 간단치 않은 삶이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에 적힌 고즈넉하고 단촐한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당대를 윽박지르는 초현실주의파 시인으로, 때로는 도색 소설 작가로, 평론가로, 기자로, 쓸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써내려간 아폴리네르에게 글쓰기는, 말하자면 명상보다는 전투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가 시에서 마침표, 쉼표 같은 구두점을 없앤 것도, 우아하고 예술적인 의도가 아니라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쟁 같은 글쓰기를 표현한 것이리라. 글쓰기는 때로 아름다운 생각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명상이 아니라, 문장의 방아쇠를 당겨 위협적인 세계에 맞서는 일이 될 때가 있다는 생각.
사실 19세기를 휩쓴 낭만주의는 자유로운 감정을 강조했지만, 그 이름과 달리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역할에도 충실했다. 낭만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은 나라를 분할통치해온 영주와 귀족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단일 국가 체제에 열광적으로 복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는 건 좋은데, 강요하니까 문제가 된다. 혁명과 결합한 낭만주의가 훗날 미래파에 이르러 전체주의, 극단적인 국가주의와 짬짜미하게 된 것이 그 결과다. 이것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시대정신이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와 활동한 아폴리네르가 모나리자 그림을 훔친 도둑으로 몰린 일이나, 널리 알려진 드레퓌스 사건(유대인 드레퓌스 대위 간첩 조작 사건)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낭만의 이면, 적대적인 열망에 올라타 내달리기 시작한 시대를 생각하면, 아내, 고양이, 친구들과 평안한 하루를 누리고 싶은 그의 소망을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사소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아폴리네르는 1차 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했다.
프랑스인으로 귀화를 거절당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들 살아 남았다. 알제리인 부모에게 태어난 까뮈도 알제리의 독립 전쟁을 반대했고, 유대인 드레퓌스도, 폴란드인 아폴리네르도 전쟁에 참전해 애국심을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나도. 실은 나도 한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30개월 간 군대에서 포병으로 일해야 했다. 아아 나처럼 섬세하고 합리적이며 분방한 인간이 거친 군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과 의심에 휩싸였지만, 생각과는 달리 군 생활이 너무 맞춤 옷처럼 잘 맞아서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만기제대하고 나는 약간의 근육과 무릎 통증을 얻었고, 아폴리네르는 전쟁터에서 머리에 관통상을 입어 뇌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간신히 총상에서 살아 남은 뒤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다. 정말 지지리 복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죽은 이후에야 프랑스 국적을 인정받은 그와 달리, 태어나서 지금까지 쭈욱 꼼짝없이 한국인으로 살아온 나의 이력이 조금은 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임대료는 끝없이 오르고, 아내는 가차없이 용돈을 깎고, 계절을 타지 않는 친구들은 커녕, 매일같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롤러코스터처럼 짜릿짜릿 피곤하다.